2023. 3. 21. 09:40ㆍ제주 문화예술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그림도 노래의 선율도 수려한 이 짧은 시를 따라가면 시인은 세상의 미쳐 날뛰는 것을 보지 않고 다른 것을 본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마치 처음 보는 일처럼 꽃 피는 것을 놀라워하는 존재로서 말이다. 어떤 나무가 컴컴하고 허접한 쓰레기 같은 땅 한쪽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꽃 줄기를 거쳐 마침내 비바람 치는 공중으로 환하게 꽃을 밀어 올리는 것까지를 보는 것이다. 거기에 생명이 거듭나는 장면을 보는 "이다지도 떨리"는 마음은 있는 거고, 아울러 몸이 열리는 과정을 알고 있는 고통의 학습자가 있는 거다. 꽃 피는 일이란 꽃이 항상 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도.
몸 하나는 협소한 것이 아니다.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 사랑에 쓸 수 있고, 그리고 기어코 그 사랑의 정념을 뒤집는 데까지 간다.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몸을 나누고 섞는 방식이라는 듯이 무명의 존재들이 '꽃의 몸'에서 겹쳐지는 바로 그 지점까지. 그리고 마음은 피는 꽃뿐만 아니라 다른, 피지 못한 꽃과 피어야 할 꽃까지 기억하는 것이다.
이 지지부진한 삶 밖으로 한 걸음이라도 내딛으려 치면 자, 여길 보세요. 이런 시간에도 내가 무엇에 어떤 고락에 뜨거워질 수 있는지! <시인>
화요일은 한라일보와 시 읽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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