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시(詩) 읽는 화요일] '혼자 먹는 밥'이 쓸쓸하지만은 않은 이유
2023. 2. 14. 09:58ㆍ제주 문화예술
728x90
혼자 먹는 밥(송수권)
혼자 먹는 밥은 쓸쓸하다
숟가락 하나
놋젓가락 둘
그 불빛 속
딸그락거리는 소리
그릇 씻어 엎다 보니
무덤과 밥그릇이 닮아 있다
우리 생에서 몇 번이나 이 빈 그릇
엎었다
되집을 수 있을까
창문으로 얼비쳐 드는 저 그믐달
방금 깨진 접시 하나
일해서 얻는 게 밥입니다. 생은 여차저차 밥을 심고 밥을 걷어 오는 일입니다. 일 마치고 돌아와 스미는 불빛에 밥그릇이 놓였습니다. 혼자 차려 먹습니다. 밥을 또 다른 밥으로 채워야 하는 빈 그릇 같은 생은 어둑어둑한 그믐 달빛 아래입니다. 육신도 정신도 되었다가 육신도 정신도 못 되었다가 하는 밥 한 숟갈, 그 한 숟갈을 퍼서 무덤으로 옮기는 것인데 무수히 그릇을 내려놓고 그릇을 엎고, 마침내 가장 가난한 자가 되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깨진 그믐달은 알고 있을지. 과연, 몸져 돌아누운 무덤도 엎었다 되집을 수 있기나 한지. 하여간에 어서, 혼자 먹는 밥을 식기 전에 어서 먹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라며? 아직 으슬으슬한데, 울안 복수초 노란 꽃잎이 피어 이런 말도 하는 것 같습니다. <시인>
한라일보에서 '제주'를 만나세요
728x90
'제주 문화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생은 그렇게 타자는 모시는 것이다" (0) | 2023.02.21 |
---|---|
마을이 품은 수많은 이야기, 제주의 가치 [갤러리ED] (0) | 2023.02.17 |
슬리퍼 차림도 'OK'… 축제처럼 편하게 즐기는 '아트페스타 제주'가 온다 (0) | 2023.02.06 |
2022년에서 2023년까지… 제주에서 만나는, 두 해를 잇는 전시 (0) | 2023.01.03 |
"신인작가로서 만만찮은 솜씨"라는 심사평 받은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기적의 남자' (0) | 2023.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