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1. 09:51ㆍ제주 문화예술
달고기*를 고는 밤
허유미
할머니가 엄마를 낳고
엄마가 우리를 낳고 드시던 달고기
곱게 갠 언니 교복 위에
배냇저고리 포개지고
달고기를 고는 서무날 밤
언니 울음 아기 울음이 해저에 닿으면
언니 가슴에 달이 붇고
아기 볼에 동실 달이 차오르고
베갯잇에 출렁이는 뽀얀 파도
젖내가 가득하네
*몸에 둥근 달 모양이 있는 생선. 해녀들이 출산한 뒤 고아 먹었다.
"서무날 바람은 꾸어서라도 분다"는 말이 있다. 바람과 썰물이 산모의 몸속을 돌아나갈 때 허약해진 그 몸을 위해 달고기 고는 날이다. 달고기는 시인이 각주에 밝힌 대로 출산한 해녀들의 젖을 돌게 만드는 음식이지만, 가족을 위해 제 몸을 내주는 '엄마' 자신과 닮은 꼴이며, 몸에 있는 달 모양 무늬는 그것을 다시 이미지화한다. 그리하여 달고기는 세상 물결을 헤쳐가는 모든 여인들과 동일시되고, 배냇저고리에 싸여 있던 나는 어느 날 몸이 벙글어 내 생을 사랑해서 엄마의 생을 알게 되는 둥근 여자가 된다. 그리고 언니의 교복 위에 배냇저고리가 포개지듯 할머니와 엄마와 포개지며 마지막으로 남은 자녀들 앞에서 동그란 달 무늬를 완성하는 것이다. 생은 그렇게 타자를 모시는 것이다. 달고기에 뜨는 달은 "언니 가슴에 달이 붇고/아기 볼에 동실 달이 차오"르는 그 달이다. 둥글게 구부러진 몸의 구유는 신성하고 거기에서 젖내나는 것을 먹는 자들은 살아서 오늘도 외롭게 몸에 달 그림을 그린다. 결국 시는 시적 화자의 자기화를 보여주며 '할머니'까지 확장되고 '달'까지 함축한다. 그 오래된 액자 속에 사랑이 있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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