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7. 10:03ㆍ제주 문화예술
고기국숫집에서(김광렬)
세 부자가 고기국숫집에 깃들었다
아비는 늙은 노새를 닮았다
어디서든 권위가 안 설 것 같은,
머리털이 몽당빗자루 같은,
밑바닥 세월 견뎌가는 듯한,
왜소한 아비와 함께 온 두 남매가
쑥부쟁이처럼 고왔다
아비가 자식들의 그릇에
말없이 돼지고기 한 점씩 얹어주었다
나는 소싯적 찌든 아비를
얼마나 부끄러워했는가
가슴에 아리게 면도날이 서는데
서럽긴 해도
저들은 덜 아프겠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핍진하게 그리는 이 시의 장점은 시인의 심안(心眼)에 있다. 말하자면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을 향해 던지는 시선의 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고기국숫집에서 고기국수 먹는 세 부자의 풍경은 생활의 소소한 무늬이지만 시의 영역 안에 붙잡히고, 가난을 앓은 사람들의 세계와 의미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동시대 "세 부자"의 왜소한 아비와 "소싯적 찌든 아비"와 그리고 화자는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으며, 이들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것은 누군가 내게 베푼 사랑의 흔적을 상징하는 고기국수이다.
그리하여 세 부자가 고기국숫집에 "깃"들고, "어디서든 권위가 안 설 것 같은" 아버지의 행위는 돼지고기 한 점에 얹히는 가장 따뜻한 언어가 된다. 그때 나이 어린 희망은 연보라색 쑥부쟁이처럼 곱다. 그리고 이런 풍경의 어느 깊은 자락에서 호출된 부끄러움과 아픔 속에서, 우리는 또 비어 있는 '어미'의 자리에 대해 물을 수 있는 시간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
화요일은 한라일보와 '시 읽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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