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세상과 소통… "우린 이런 마음이에요"

2023. 4. 23. 12:57제주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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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스펙트럼 장애' 김현정 작가
그림 그리며 놀기 좋아하던 아이
작품 활동 이으며 세상에 '한 발'
다섯 번째 개인전 '~ 살던 고향은'
말 아닌 그림으로 주고받는 마음

 



"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을 때 통 안에 갇혀 숨이 막힐 것 같아 펄쩍 펄쩍 뛰쳐나오고 싶다. 귤들이 내게 말을 해 줬다. '서로 손잡고 꼭 껴안아 주려고 하는 거야'." ('작가노트' 중)

종이와 크레파스만 있으면 10시간 넘는 비행도 거뜬하던 꼬마가 스물여덟 살이 됐다. 누군가와 눈 맞추는 것도, 말하는 것도 여전히 힘들지만 그림으로 세상과 마음을 주고받는다. 지난 20일부터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작가 김현정 씨의 이야기다.

 

김현정 작가가 지난 20일 자신의 티셔츠 작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가 그림마다 남기는 사인 '정'의 'ㅇ'도 환히 웃는다.

 


|그림 좋아하던 아이, 세상과 소통하다

발달장애의 하나인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현정 씨가 그림을 배운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사실 이보다 훨씬 전부터 그림 그리는 걸 놀이처럼 즐겼다. 현정 씨의 엄마 홍금나(58) 씨는 "유치원 때였는데, 11시간을 가는 비행기에서도 종이와 크레파스만 가지고 지루하지 않게 놀더라"면서 "그때 현정이가 이걸 좋아하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현정 씨는 중학교 3학년, 이른 나이에 첫 개인전을 열었다. 주변에 있는 물건, 자연처럼 눈에 담은 것을 그려 냈다. 현정 씨에겐 처음으로 자신을 내보이는 일이었다. 그림으로라도 세상과 소통하길 바라는 가족들의 마음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자폐스펙트럼인 현정이는 학교에 가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그림으로 소통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첫 전시회를 열게 됐죠. 그때 중학교 친구들이 와서 했던 얘기가 있어요. '현정이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거였죠. 아이들이 현정이를 새롭게 보는 기회가 된 거예요."

이후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로 나서며 3번의 전시회를 더 열었다. 이번 'home, sweet home; 나의 살던 고향은'이란 제목을 붙인 전시는 현정 씨의 다섯 번째 개인전이다. 그의 작품에 담긴 빨간 동백꽃, 잘 익은 감귤, 풀을 뜯는 말, 거친 돌멩이는 곧, '고향 제주'이다. 현정 씨의 어린 시절 기억, 가족과의 추억이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김현정 작가의 티셔츠 작품. 올해 안에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다시 한 번 전시한 뒤 현지 뜨라핑크라상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기부할 예정이다.
김현정 작가의 작품.

 


|반팔 티셔츠에 그린 그림… "사랑 돌려줄 것"

현정 씨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처음으로 흰색 반팔 티셔츠를 캔버스로 삼았다. 지난 2021년에 기획해 차곡차곡 완성한 티셔츠 작품 50여 점이 선보이고 있다.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어디든 함께 동행할 수 있는 티셔츠로 소통하고자 한다"는 뜻이자, 그동안 받은 사랑을 돌려 주고 싶다는 표현이다. 전시가 끝나면 모든 티셔츠 작품은 기부될 예정이다.

"현정이의 개인전은 어제보다 나아지기 위한 '미션' 같은 거예요. 조금 더 나은 자신을 위한 노력인 거죠. 그렇지만 본인 개인을 위한 개인전이라기보다 사회에 기여하는 의미가 있어요. 자폐로 인해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자폐이기에 가족과 이웃에게 사랑을 받기도 하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봉사를 하는 거죠."

티셔츠가 향할 곳은 캄보디아 프놈펜이다. 현정 씨의 그림이 담긴 티셔츠를 학생 수에 맞춰 추가로 만들어 현지 뜨라핑크라상 초등학교 3000명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 학교는 제주YMCA 국제장학봉사위원회가 2018년 건립한 곳이다.

엄마 금나 씨는 "학교가 건립된 프놈펜에 가 보니 아이들이 신발도 안 신은 맨발에 제대로 된 옷도 못 입고 있었다"며 "아이들이 티 하나라도 깨끗하게 입고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작품을 선물하려 한다. 올해 가을이나 겨울쯤 현지에서 전시회를 연 뒤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현정 작가의 디지털 드로잉 작품. 엄마 금나 씨가 붙인 제목은 '내 손 위 그림색 : ASD's 불안'이다. 피가 날 정도로 손톱을 깎던 딸의 마음을 대신 전한다.

 

 

|"자폐증 아이들의 마음은 이럴 거예요"

티셔츠와 함께 전시장에 걸린 디지털 드로잉 작품은 현정 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정 씨가 그리고, 엄마 금나 씨가 글을 썼다. 더운 여름에도 꼭 양말을 신고 자고, 쓰레기가 아닌데도 갖다 버리고, 피가 날 정도로 손톱을 짧게 자르던 딸의 마음을 엄마 금나 씨가 대신 전한다. "우리별 사람들은 자기만의 오선지를 가지고 있다. … 나는 지구별에 와서도 내 오선지에 맞춰 행동한다"(작품 제목 : 도 도 레 레 미 미 : ASD's 정렬)처럼 자폐스펙트럼의 증상인 강박, 불안, 집착 등의 행동에 숨은 속마음을 속삭이듯 말한다. 금나 씨는 "'자폐 아이들의 세상은 이러한 마음일 것'이라고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 마음을 이해하는 게 비로소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이해하는 길일 거라고 금나 씨는 말한다. "자폐스펙트럼 장애에 대해 알지 못하면 아이들이 특이한 행동을 보일 때 이렇게 얘기할 거예요. '왜 가만히 안 있어?', '왜 소리를 질러?'라고 말이에요. 그런데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를 읽어보면 조금씩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는 현정 씨의 다섯 번째 개인전이 '우리'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다. 전시는 이달 30일까지 제주도 설문대여성문화센터(제주시 선덕로8길 12)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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